2022. 11. 13. 00:34ㆍ독서
2022년 11월
하반기 채용은 대부분이 끝나가고,
올해 준비하던 자격증 시험도 마무리되었다.
목표로 하던 취업 실패가 확실해지고
허탈한 마음을 달래줄 책을 찾아보았다.
나, 이대로 괜찮은 사람
박진영
"인생 기준표는 쓰레기통에 버려"
주변에서 혹은 인터넷을 하다가도 유튜브를 보다가도 아래와 같은 말을 종종 보거나 듣는다.
"졸업했으면 당연히 대학원을 가든지 취직을 하든지 해야지."
"대학원에 갔으면 석사를 끝 내고 박사까지 해야지."
"그다음엔 ○○을 하고 그다음엔 ㅇㅇ을 해야지."
취업에 실패하고 대학원을 알아보고 있던 터라 뜨끔했다.
"
그러다 타 문화권 친구에게서 우리와는 다른 모습을 보았다.
"대학에 갔는데 나와 잘 맞지 않는 것 같아서 금방 관뒀어.
그 후에는 치위생사가 되고 싶어서 좀 해봤지만 그것 역시 안 맞아서 관뒀고,
가장 최근에는 유치원 선생님이 되려다 실패했지.
지금은 웹디자인을 하고 있는데 아직까지는 잘 맞아."
정해진 트랙에 맞추어 앞으로 달리기만 하는 바쁜 이들이 주변에 한 트럭일 때에는 정말 그것이 옳은 방식인 줄 알았다.
그리고 그 속에서 트랙에 맞추어 뛰지 못하는 내게 문제가 있는 거라고 생각하며 스스로 비하했다.
하지만 참 단순하게도 이제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없어지니까 생각이 변했다.
언제나 내가 부족하고 잘못되었다고 느꼈지만 더는 그렇게 느끼지 않았다.
그리고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문제는 내가 아니라, 내 의사와 상관없이 코앞까지 들이밀어진 '인생 기준표' 였음을 말이다.
"
'우리 나라 문화권도 저렇게 바뀌면 좋을 텐데, 가능할까?'
'우리 문화권에서 계속 사는 사람에게도 저 생각이 맞을까?'
"
중요한 것은 건강한 방법으로 높은 자존감을 유지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건강하지 않은 방법으로 높은 자존감을 유지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이다.
즉 높은 자존감은 자존감 추구 과정 의 결과일 뿐 그 자존감 추구법이 '건강한가'를 보장하지 않는다.
높지만 전혀 건강하지 않고 심지어 장기적으로는 자신과 타인에게 해로울 수도 있는 자존감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크로커 등의 학자들은 자존감의 높낮이보다
자존감을 '어떻게 추구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가 우리의 행복과 정신건강에 훨씬 더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
'자존감의 고정 관념을 깨뜨려버렸다.'
'그럼 우리는 왜 자존감을 유지하고 혹은 자신은 자존감이 높은 사람인 것을 어필하고자 하는 것일까?'
"
그 이유는, 아무리 자존감이 주관적인 판단이라고 해도
'나는 멋진 사람'이라는 생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객 관적인 '근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 근 거를 수월하게 댈 수 있을 만큼 삶이 항상 만족스럽게 흘러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뛰어난 실력이나 재능도 없고, 인간관계도 매끄럽지 못하며, 건강도 좋지 않다.
취미랄 것도 없고 삶의 즐거움 따위는 느껴본 적이 없다.
"
'와.. 머리를 쎄게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
만약 이런 상황에 처해 있다면,
나의 삶을, 이런 나 자신을 진정으로 좋아할 수 있을까? 아마 어려울 것이다.
현실이 비참할 수록 그것을 인식하는 데는 큰 고통이 따른다.
따라서 우리는 이런 경우에도 실은 이런 때일수록
더더욱 자신에 대한 좋은 인식, 즉 긍정적인 자기 지각을 가지고 싶어 한다.
본능적으로 자존감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를 찾아 나서는 것이다.
만약 근거가 없다면 만들어내면 된다.
한 가지 방법은 '이게 다 ㅇㅇ 때문'이라며 내가 아닌 다른 사람 또는 외적 요소를 탓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나는 원래 괜찮은 사람이지만 외부의 방해 때문에 잠시 힘겨운 시간을 보낼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가능하다.
또는 과거에 인기가 많았다든가, 좋은 학교를 다녔다든가, 집 안이 부유했다든가 등의 사실을 강조하는 방법도 있다.
나의 본질은 초라한 현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영광스러운 과거에 있다고 생각함으로써 자존감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
'두 대 맞았다..저런 상황에 놓였을 때 내가 하던 대부분의 행동과 생각들이라..'
"
한편, 인간이 자신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 중 하나가 바로 '비교'이다.
우리는 원하든 원치 않든 끊임없이 나와 남을 비교해서 자기 위치를 파악하는 사회적 동물이다.
다른 사람들이 10을 하든 100을 하든 오직 나만의 기준으로 만족하면서 살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우리에게는 그게 너무 어렵다.
비교를 통해 자기 가치를 확인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앞을 향해 달리는 한 나 또한 끊임없이 달려서 그들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거나 앞서 나가야 한다.
이 레이스에서는 잠시라도 멈춰 서면 금방 도태되어버리기 때문에
스스로 마구 채찍질을 해 스퍼트를 올려야 '나 잘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조금 얻을 수 있다.
'객관적인 잘남의 근거를 얻는 과정은 이렇게나 극한 레이스이다.
그래서 제니퍼 크로커는 자존감을 추구하 고 유지하는 데에는 많은 '비용'이 요구된다고 이야기한다.
건강하지 못한 방식의 자존감 추구법
(다른 사람을 깎아내리기, 책임을 외부로 돌리기. 이기지 못할 일은 시도도 하지 않기 등등)도 문제이 지만,
정말로 괜찮은 사람이 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건강한' 자존감 추구법 또한 삶을 피곤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마크 리어리는 자존감이란 좋은 인간관계나 좋은 성과를 만들어내는 '원인'이라기보다
삶이 어느 정도 잘 굴러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일종의 계기판 또는 '결과'라고 이야기한다.
또 자존감 이 낮다고 해도 의기소침해지는 것 외에 어떤 문제행동을 만드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한다.
즉 우리가 부러워하는 건강한 자존감의 소유자들은 자존감이 높기 때문에 삶이 괜찮은 게 아니라
삶이 이미 어느 정도 괜찮기 때문에 자존감이 높은 거라는 얘기다.
높은 자존감 덕분에 연봉이 높고 인간관계가 좋은 게 아니라,
이미 그럭저럭 성공해왔고 인간관계도 잘 되어왔기 때문에 그 결과로써 자존감이 높은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다.
"
'결국 자존감이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삶이 윤택하기에 자존감이 높은 거였다!'
"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자신에 대해 평가자로서의 태도를 버리고 지지자로서의 역할을 갖는것"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나를 비난하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가 자기 비난을 계속하는 건 어쩌면 나 스스로 충분히 벌을 내렸으니까,
(남이 나를 싫어하기 전에) 나도 나를 싫어하니까,
그걸로 된 거라고 생각하면서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함인지도 모르겠다.
또는 나에게 엄격한 나를 주변에서 알아봐 주길,
그렇게까지 나쁜 사람은 아니라며 누군가가 나를 위로해주길 바라서 그러는 걸지도 모르겠다.
결국 '내가 그렇게까지 나쁜 인간은 아니야!'라며 아주 우회적인 방법으로 항변하는 것일 수도 있다.
"
'나 또한 이러했다..'
"
천재들 역시 삶의 굴곡을 겪으면서 어떨 때는 별로인 성과를 내고 또 어떨 때는 빛나는 성과를 냈다.
항상 천재성으로 빛났을 것 같은 이들의 삶 속에도 슬럼프와 내리막의 경험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카우프만은 이들과 보통 사람들의 차이는 (재능뿐 아니라) 얼마나 꾸준히 과감하게 도전했느냐에 있다고 말했다.
실패와 좌절을 경험하면서도 계속해서 과감한 도전을 한 이들처럼,
우리도 실패에 대해 좀 더 겸허한 마음을 가져보면 어떨까?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여기며 충격을 받는 대신에 말이다.
"
'비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는 것과 같이 들리지만.. 뭐.. 틀린 말도 아니니..'
"지금 여기에 집중하는 연습"
"
심리학자 대니얼 길버트 Daniel Gilbert 등의 연구에서,
현재에 집중하지 못한 채 딴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들은,
그 내용이 어떤 것이든 상관없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스스로 불행한 시간을 사서 살고 따라서 불행한 경향이 나타났다.
시간과 공간을 떠나 과거에 대한 후회 또는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하는 것은
고등동물로서 인간이 더 나은 미래를 계획하고 준비하는데 분명 도움을 준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인간이 '지금'을 놓지 게 만드는 등 큰 비용을 발생시키기도 한다.
마크 리어리의 말처럼 생각이 많은 동물이라는 사실은 선물인 동시에 저주인 셈이다.
"
'미래지향적으로 생각하려는 경향이 있는 내가 겪는 문제네..'
"
해결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산책을 하면서 눈앞에 보이는 길과 나무, 풀에 집중하기,
한 걸음 한 걸음 발자국 소리에 집중하기,
풀 냄새에 집중하기 등등을 해보는 것이다.
또는 명상을 하듯 잠시 눈을 감고 앉아 있거나 누워서 심장 박동, 숨 쉬는 소리에 집중해보는 것이다.
이렇게 십여 분 정도만 마음을 비우고 현재에 머무르게 하는 것만으로
성과가 향상되고 스트레스가 감소하며 부정적 정서가 가라앉고 마인드 컨트롤을 잘하게 된다고 한다.
언뜻 명상이란 신비하고 불가사의한 무엇처럼 생각되지만
사실 명상은 '지금 여기'에 집중하는 대신 다른 데는 신경을 끄는 연습에 가깝다.
따라서 정신력의 낭비와 쓸데없는 걱정을 막아 주고 지금 하는 일을 더 잘하게 만들어주며,
정서 조절을 도와주고, 스트레스를 감소시키는 등의 효과가 있다.
"
"쓸모 있는 인간의 기준"
"
자신에게 친절해지기, 인간이라면 모두 지니고 있는 한계와 약점을 받아들이기, 마음의 소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 들기.
지금까지 "자기 자비"의 세 가지 기초에 대해 이야기해보았다.
그런데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를 괴롭히는 본질적인 두려움이 있다.
바로 '나는 쓸모 있는 사람인가?"라는 물음에서 나오는 두려움이다.
누구보다 열심히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친구가 있다.
어느 날 그 친구가 "나는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라고 말했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문득 여러 가지 질문이 떠올랐다.
쓸모 있는 사람이란 뭐지? 그건 누가 어떻게 정하는 것이지?
어떤 한 사람에게 쓸모 있다고 인정받으면 되는 걸까, 아니면 여 러 사람의 인정이 필요한 걸까?
"
'S전자 자소서에 "쓸모 있는 사람이 되겠습니다"라고 썼는데..'
"삶을 지탱하는 건 거창한 게 아니야"
"
수십 년간의 연구 끝에 학자들은
사람이 자신의 삶을 허무하지 않고 의미 있다고 느끼기 위해서는 크게 세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하나는 내 삶에 궁극적으로 큰 목적이 존재한다는 '목적의식 purpose',
다른 하나는 내 삶이 쓸모없지 않으며 '중요성 significance'을 가진다는 느낌,
마지막은 세상에는 나름의 규칙 또는 이치가 존재해서
다양한 사건들이 내가 예측 predictability 하고 신뢰 reliability 할 수 있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는 느낌이다.
어떻게 하면 이런 느낌을 가질 수 있을까?
맛있는 걸 먹고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등 일상 소소한 즐거움,
스스로 뭔가를 만들거나 키우는 등 작은 생산 활동을 하며 느끼는 성취감,
내 힘으로 무언가를 해냈다는 통제감, 가족(육아 포함)이나 친구, 반려동물 등 누군가를 돌보는 기쁨,
누군가에게 내가 필요한 사람이라는 데서 오는 쓸모 있다는 느낌과 의미감, 흠뻑 빠져들 만한 열정⋯⋯
이렇게 일상생활에서 흔히 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들에서 느껴지는 감정들이
우리가 '나는 행복하고 내 삶 또한 의미가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뭔가 거창한 것이 있어야 할 것 같지만, 의미를 찾는 일은 생각보다 쉽고 특별할 게 없다.
삶의 의미에 대해 머리 아프게 고뇌할 시간에 밥이나 맛있게 먹으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일상에서 흔히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작은 일에서 충실하게 즐거움과 의미를 거두는 것이 바람직하므로 일리 있는 말이다. 삶이 아무 의미 없이 느껴질 때 인생을 180도 바꿀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나서는 것도 좋지만 우선 맛있는 걸 먹어보자.
삶이 힘들 때일수록 이렇게 기본적인 것이 우리 삶을 지탱해 주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래서 내가 일상 드라마나 일상 영화를 좋아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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